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마누엘 칸트 (문단 편집) == 업적 == '''근대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는 철학 연구가 칸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철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공리주의에서 후기 칸트학파의 사상에 이르는 혁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채로 철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분야 모두에서 유지되었다. [[경험론]][* 인간의 모든 인식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무언가 경험을 쌓기 전까지는 인식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영국에서 주창되었고 주요 학자로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있다.]과 [[합리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본유관념(本有觀念)은 신에게 선물받은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경험 없이도 인간은 사색을 통해 진리를 도출할 수 있다. 수학 공식 같은 거라든지. 주창자로 [[르네 데카르트|데카르트]]가 대표적.]이 치고받고 싸우던 18세기 유럽 철학계를 평정한 거인. 실제로 칸트 이전 세대에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구분이 없었다. 같은 경험주의론자인 여러 영국 철학자조차 자신들이 같은 학파에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들을 플라톤 학파 혹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라고 지칭하였다. 이러한 학파의 구분은 칸트 이후, 정확히 말해서는 칸트에 대한 연구가 극에 달하던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에 와서야 정립되었다. 바꿔 말하면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 하나로 17-18세기 존재하던 모든 영국, 대륙철학자들을 단 2개의 학파로 양립시키고 그들이 대립하던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한 후 이를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풀어낸 대단한 인물. 근대철학은 칸트 전과 후로 나뉜다는 얘기나 칸트를 모든 강들이 흘러 들었다가 다시 갈라져 나가는 호수로 비유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의미의 [[윤리]]와 [[도덕]]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도 칸트에서부터 시작됐다. 인간이 지켜야 할 의무론적 윤리란 무엇이며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체계적인 인식론과 실천 이성 구분을 통해 그 구조를 펼쳐보였다. 칸트가 인식론뿐만 아니라 근대 윤리학의 시작을 알렸다고 봐도 될 듯. 게다가 판단력 비판을 통해 인간의 미학 인식까지 구분과 과정을 설명 시도했다. 칸트가 인류 지식 세계에 공헌한 바는 이렇듯 어마어마하다. 저명한 철학자 R.샤하트는 "칸트 이전의 철학자들을 불완전하게 이해해도 현대 철학 이해에 큰 지장은 없지만, 칸트를 불완전하게 이해하면 현대 철학을 이해할 수 없다." 라고 말했을 정도. 그 스스로 "[[데이비드 흄]]의 책을 읽고 미망에서 깨어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서 칸트가 읽은 흄의 책은 『인간오성론』으로 추정되는데 이 책은 흄의 첫 번째 저서이자 대표작인 『인성론』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고 문체도 좀 더 다듬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흄은 『인간오성론』에서는 나오지 않는 "인격동일성"에 관한 문제를 『인성론』에서만 논의했다. 만약 칸트가 『인성론』을 읽었다면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칸트는 흄의 인격동일성 문제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후대 연구자들은 칸트가 『인성론』은 읽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자칫 어렵게 들리는 이 말은 그냥 흄과 칸트 모두 오직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철학의 탐구 범위를 좁히자는 데에 동의한다는 말이고, 이 점에서 그는 경험론자와 닮았다. 그래서 칸트의 이 고백은 "경험적인 것, 혹은 수학적인 것이 아닌 모든 책은 불태워 버리라"는 흄의 말과 상통한다. (기존의 형이상학이 완전히 쓸모없다는 데에서 칸트는 흄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래서 현대 영미형이상학에서 흄은 형이상학에 대한 회의주의자로 자주 다루어지지만 칸트는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이와 같은 경험적인 범위 내로 철학의 탐구 범위를 좁히면서도 흄의 탐구 방식을 반드시 따라가지는 않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칸트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는 지식이 아니라 바로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할 원칙이 무엇일지를 탐구했다. 흄의 경험론은 모든 경험이 공유하는 어떤 일반적인 성질, 이를테면 어떤 대상이든지 그것에 대한 나의 관념(idea)은 나의 인상(impression)에서 기인한다는 것에 주목하는 반면, 칸트는 모든 경험이 가져야만 할 어떤 형식에 주목한다. 이처럼 그는 경험론적인 틀 내에서 합리론적인 정신을 가지고 세계를 탐구하였다고 볼 수 있기에 굳이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경험론과 합리론자의 종합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흄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칸트의 대응에 동의했을지는 알 길이 없다. 칸트는 흄을 알았지만 흄은 칸트를 몰랐는데 흄이 세상을 떠났을 때가 1776년으로 『[[순수이성비판]]』이 출판되려면 5년이 더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